‘행복의 나라’, ‘경제지수가 아닌 행복지수를 국가의 가치로 내세우는 나라’.
부탄을 수식하는 대표적인 이야기들이다. 히말라야의 고산지대 속에 숨어 있는 은둔의 왕국 부탄은 우리나라 면적의 40% 크기에 인구 약 80만 명의 소국이지만 이 땅에 퍼진 행복의 크기는 세계 제일로 평가받는다.
해발 고도 2,000미터 이상, 평균 3,000미터 고지대의 험준한 산과 산 사이에 작은 도시들이 형성되어 있고, 사람들은 산 속의 척박한 땅을 일궈 생을 이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삶을 지탱하고 지켜나갈 수 있는 진짜 이유는 바람에 실려 산 속 깊은 곳까지 떠다니는 부처님의 말씀과 오로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그들의 왕의 지고지순한 마음과 정신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기에 과거 우리 땅에도 깊이 베여있었던 사람의 순수함과 자연의 청정함이 지금도 남아있어 아름다웠던 인생의 단편들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부탄으로 가는 길, 우리가 가방 속에 가득 챙겨할 것은 만나야할 것과 보아야할 것에 대한 옛 추억들이다.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또는 마지막 샹그릴라 등으로 알려진 부탄의 1인당 GNP는 불과 우리의 10분의 1 정도인 3,000달러 정도이지만 국민의 대다수는 그들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국민행복이 국가 운영의 가장 큰 과제인 부탄이기에 그들은 GNH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모든 국가 정책과 민간 분야의 사업들은 법을 통해 국민행복을 우선으로 추진하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첫인상, 부탄 파로 국제공항
방콕에서 이른 아침 떠난 비행기는 인도의 콜카타에서 잠시 쉬어가며 손님을 바꿔 태우고 다시 하늘로 올랐다. 부탄이 가까워진 건지 갑자기 기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의 함성과 아쉬움이 뒤섞인 소리들, 8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의 눈 덮인 고봉들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감췄다 하고 있었다. 무엇하나 내 맘 같지 않은 시간, 그럼에도 서서히 부탄여행의 흥분이 시작되는 시간.
파로 국제공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착륙하기 어려운 공항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었다. 항공기가 지나다닐 수 있는 상공과 넓고 긴 활주로가 필요하지만 해발 2230미터의 산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탓에 항공기가 착륙할 만한 공간이 부족해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가 떠오를 때 쯤, 비행기는 어느새 활주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위기감은 짧은 활주로에 놓인 공항청사의 모습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공항에 있는 작은 사원인가?’ 은둔의 왕국, 작은 불교왕국 부탄, 이라는 수식어들이 드디어 실감나고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왔다. 한산하기만한 시골 공항일거라 생각했지만 공항 앞을 가득 메운 뜻밖의 환영 인파는 이곳이 부탄 유일의 국제공항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후, 마중 나온 가이드를 찾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들의 얼굴이 한국 사람들의 얼굴과 많이 닮았다는 사실과 환영 인파들이 대부분 남자라는 것, 그리고 모두가 치마를 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돌아봐도 어느 때보다 부탄스러웠던 풍경.
※ 부탄의 전통복장 고(Gho)와 키라(Kira)
부탄 사람들은 일상에서도 그들의 전통복장을 즐겨 입는다. 남성들의 전통복장은 '고', 여성들의 전통복장은 '키라'라고 부른다. 둘 다 우리의 두루마기와 같은 상의와 여성들의 치마나 스커트와 비슷한 하의로 되어 있는데 고는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짧은 하의와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로 구성되어 있어 치마를 입지 않는 국가의 남자들에게는 어색하다.
부탄에서는 공적인 행사나 관공서를 비롯해 여행가이드와 호텔 종업원 등도 전통복장을 반드시 입어야 한다
★TIP★ 부탄행 항공권 좌석은 ‘A’
부탄으로 들어가는 길은 녹록치 않다. 부탄에어와 드룩에어 두 항공사에서만 부탄의 파로 국제공항을 오가는 국제선을 운행하며 운행 구간도 태국의 방콕과 인도, 네팔 구간이 전부다.
방콕에서 부탄으로 들어갈 때는 왼쪽 창가 좌석인 ‘A'석에 앉는 것이 좋다. 부탄을 눈앞에 두고 만년설로 장관을 이루는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연이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 날씨가 좋은 날에는 그 유명한 에베레스트 산을 볼 수 있다고도 하며, 부탄에서 방콕으로 나올 때에는 반대로 오른쪽 창가 좌석에 앉으면 다시 그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참고로 부탄 입국 시에는 담배는 200개비, 술은 1리터까지만 반입이 가능하다.
파로 시내에서
예상보다 안락한 투어 차량에 올랐다. 부드럽게 공항을 빠져나가는 대한민국 브랜드의 SUV 차량에 초행길의 불안감은 잊었다. 그렇게 찾아든 편안함은 또 다른 곳에서도 전해졌다.
건너 마을 아저씨가 아닌가 싶은 한국인을 닮은 운전사의 얼굴, 낯설지만 급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시내 풍경 그리고 둔탁하지 않은 촌 동네의 아날로그 감성들, 그럼에도 가난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하기만 한 거리.
잠시 스마트폰의 심카드를 바꾸기 위해 작은 가게에 들렀다. 저마다 손에 든 문명의 화려함과 가게 안의 낡은 공기가 뒤섞여 부탄에 대한 호기심을 마구 증폭시켜 놓았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바깥세상과 부탄을 이어주는 통로, 파로.
파로
파로는 부탄의 서쪽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탄의 수도인 팀푸와는 차로 약 1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부탄 국제공항이 이곳에 있어 항공편으로 부탄을 드나드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곳으로 호텔과 리조트 그리고 일자리를 찾아온 부탄의 젊은이들이 많은 도시이다.
부탄 사람들이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기는 곳 중 하나인 탁상 사원은 모든 여행객들이 반드시 다녀가는 부탄여행의 핵심 볼거리이다.
※ 쿠주 장폴라(kuzu zangpola)
우리나라의 ‘안녕하세요’와 같은 부탄의 기본 인사.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부탄 사람들은 자국의 언어로 인사를 건네는 외국인에게 더욱 친근하게 친절하게 대해준다. '감사합니다'를 뜻하는 ‘까딘치’도 잊지말자.
부탄 이야기의 시작, 탁상 곰파(Takshang Gompa)
부탄을 여행하며 가이드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름은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였다. 국민의 90% 이상이 불교도인 부탄은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중한 스승이라는 의미의 구루 린포체(Guru Limpoche)로 불리기도 하는 파드마삼바바는 인도의 탄트라 불교, 즉 밀교를 부탄에 들여왔으며, 부탄 사람들은 우리가 단군왕검을 모시듯 그렇게 파드마삼바바를 숭배한다.
부탄의 건국 신화나 다름없는 파드마삼바바의 이야기가 탁상 곰파에 남아있다. 8세기 호랑이를 타고 날아온 파드마삼바바는 아득한 절벽 위에 둥지를 튼 탁상 곰파에서 수도에 정진했다고 전해진다.
부탄여행의 첫 목적지는 바로 그 신화를 만나러 가는 길. 부탄을 이해하고 여행을 시작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지만,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다. 3시간 쯤, 산길을 올라야 한다. 등산로 입구에는 등에 안장을 얹은 말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도보를 택했다.
그리 거칠지 않은 길에 끊임없이 여행객들과 부탄 남성들의 전통복장인 ‘고'를 입은 가이드들을 마주쳤다. 치마를 닮은 고를 입은 남자들의 모습도 낯설지만, 치마를 입고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신은 뒤 등산화를 신은 모습은 정말로 어색해서 가끔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곰파는 사원이라는 뜻이고 탁상 곰파는 호랑이 둥지 사원을 뜻하는 Tiger's Nest로 통한다. 1692년 최초로 자리를 잡은 탁상 곰파는 부탄을 대표하는 여행지로 부탄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자료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파마드삼바바의 신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뛰어난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화를 품고 있는 곳들의 아름다움과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그곳들의 특성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탁상 곰파를 향해 계속해서 산을 오르는 길에 이따금씩 사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발 3천 미터의 하늘에 매달린, 아슬아슬하다가도 그림처럼 아름답고 또 절묘한 그 모습에서 계속해서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목적지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오자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신의 영역이 시작된 걸까. 마지막 다리를 건너고 사원 앞에 다다르자 무의식적으로 경건해지는 여행자들의 모습들, 입가를 떠나지 못하는 평화로운 미소를 만났다.
※ 꼭 기억해야 할 부탄의 성인들
부탄여행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름들이 있다. 때문에 이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여행 내내 가이드의 설명을 이해못할 수도 있다.
부탄에 불교를 처음으로 전한 파드마삼바바, 처음으로 부탄 왕국을 통일하며 부탄의 정체성을 확립한 샤브드롱 나왕 남겔(1594~1651), '미친 성자(Divine Madman)'로 알려진 남근마을의 주인공 드룩파 쿤리(1455~1529). 이들의 이름만큼은 꼭 알아두자.
팀푸(Thimphu)
부탄의 수도인 팀푸는 부탄에서 도시적인 풍경을 거의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법에 의해 타 지역은 건물이 3층을 넘지 못하지만 팀푸에서는 6층까지 허용돼 수도로서 차별화된 모습이 시각적으로 좀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리의 눈에는 여전히 시골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곳, 하지만 여느 빈국들과 달리 도시의 깔끔함과 청결함만은 선진국 못지않은 곳. 높은 곳에 올라 팀푸를 내려다보면 산맥 사이에 빼곡하게 들어선 도시의 풍경이 이색적이다.
팀푸에서 가장 번화한, 부탄 최고의 중심가.
아침 출근길, 갈 길 바쁜 자동차의 운전자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신호등이 없는 부탄의 도로를 책임지는 손.
바쁜 손과 달리 잔잔히 미소지으며 때로는 하품도 하는,
우리에게는 참 신기한 인간 신호등.
국가의 중심, 타쉬쵸 종(Tashichho Dzong)
학창시절 교실에는 근엄한 대통령의 얼굴이 있는 액자가 늘 걸려있었다. 의미도 모른 채 바라봤던 그 모습은 학교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사라진 우리나라의 옛 풍경처럼, 부탄의 국왕과 왕비의 모습을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길거리, 시장, 음식점, 심지어 가정집에서도 국왕과 왕비의 사진을 걸어놓아 하루에도 수십 번 그들의 얼굴을 마주했다. 본인 사진은 없어도 국왕과 왕비의 사진은 꼭 가지고 있는 부탄 사람들의 어마어마한 왕가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모습들 때문에라도 부탄의 국왕과 왕가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왕이 살고 있는 집을 구경하거나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국왕의 집무실과 행정기관, 종교기관이 함께 있는 곳은 둘러볼 수 있었다. 타쉬쵸 종이 바로 그곳.
하얀 성벽과 지붕 위 뾰족한 금탑이 웅장하게 서 있는 타쉬쵸 종의 일부 공간이 여행객들에게 공개되어 내부를 둘러봤다. ‘종’이라는 부탄만의 독특한 풍경을 두 눈에 담고 돌아가는 길, 가이드가 길 옆 아담한 건물을 손짓하며 그들의 국왕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일러줬다.
부탄에서는 무척이나 거대한 규모의 타쉬쵸 종에 비해 왠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작은 국왕의 거처 앞에서 ‘정말 왕이 사는 집이 맞을까?’ 하는 의문과 알 수 없는 부러움이 함께 몰려들던 순간. 한 나라의 지도자를 사랑할 수 있는 국민만큼 행복한 국민이 또 있을까.
※ 종(Dzong)과 곰파(Gompa)
부탄여행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곳이 종과 곰파다. ‘종’은 각 도시의 행정기관과 종교기관이 함께 있는 곳으로 적 방어를 위한 요새의 기능이 포함된 지역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타쉬쵸 종은 팀푸 종으로도 불리며, 부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종으로 부탄 불교의 총 본산이라고 할 수 있다.
부탄 불교의 지도자들이 비교적 따뜻한 여름을 이곳에서 지내며, 날씨가 추워지면 푸나카 종으로 건너가 겨울을 난다. 행정과 무관한 불교 사원은 곰파라고 한다. 보통 종보다 규모가 작은 사원으로 스님들이 수행하고 공부하는 공간이다.
동그라미로 그리는 행복, 내셔널 메모리얼 초르텐(National memorial choeten)
스투파라고 부르는 탑 주변을 사람들이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행복을 비는 의식, ‘코라’.
부탄에서는 어딜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심지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도로에서 스투파가 나타나면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스투파를 한 바퀴 돌고 지나가는 부탄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팀푸 시내 중심에 위치한 '내셔널 메모리얼 초르텐'에는 부탄 여행 중 봤던 것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스투파 주위를 돌고 있었다. 평일 오후 시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부탄의 절실한 불교신자와 승려들도 있었지만 비슷한 불교문화를 갖고 있는 여행객들과 학생이나 직장인들의 모습도 적지 않았다. 서로 모습은 다르지만 그들의 얼굴에 각인된 진지함과 간절함은 한결같았다.
코라를 돌고 있는 옆에서는 스투파를 향해 절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마니차를 돌리고 있는 사람들. 그 모든 풍경들이 이곳의 주인공인 부탄의 3대 국왕 지그메 도르지 왕축을 위한 것이든, 자신과 가족을 위한 것이든, 그들이 그리는 동그라미 속에 담긴 마음은 모두 똑같아 보였다. 행복, 부탄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 내셔털 메모리얼 초르텐
국립기념탑으로 부탄의 3대 국왕인 지그메 도르지 왕축이 서거한 후 국왕의 어머니가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한 추모탑이다. 부탄의 근대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국왕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 그리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안타까운 마음이 함께 남아있는 곳이다.
팀푸의 주요 볼거리들
부다 포인트(Buddha Point)
2015년 팀푸의 시내에서 약 6킬로미터 떨어진 산 정상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불상이 세워졌다. 높이가 무려 51.5미터에 이르는 이 거대한 불상은 부다 도르덴마(Buddha Dordenma) 불상으로 번쩍이는 황금장식이 보는 이들의 시선을 단번에 압도한다.
그에 비해 하늘 아래 가지런히 앉아 자애로운 눈빛으로 팀푸를 내려다보고 있는 부처님의 얼굴에는 부탄의 영원한 행복을 염원하는 부탄 국민들과 부처님의 마음이 가득해 보인다.
국립 공예학교(Thimphu Institute for Zorig Chusum)
‘Zorig Chusum’은 13가지 종류에 이르는 부탄의 전통 미술공예 전문 교육기관이다. 부탄 정부에서 운영하는 학교로 교육기관이지만 여행객들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관람을 허가하여 부탄에서 볼 수 있는 전통 미술 분야의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둘러볼 수 있다.
부탄의 아름다운 미술품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부탄 전통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전통 의상과 자수를 비롯해 조각, 회화 등 그 분야도 다양해 여행의 흥미를 더한다. 이곳의 어린 학생들의 진지하면서도 어딘지 어리숙한 모습들도 재미있는 볼거리이다.
전통 제지 공장(Jungshi Paper factory)
부탄의 투박한 전통 종이를 만드는 제지 공장도 팀푸 여행지 중 한 곳이다. 가내수공업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이 공장에 가면 원재료인 다프네 나무 작업에서부터 한 장의 종이가 탄생하는 마지막 과정까지의 전 과정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한지인 닥종이를 만드는 과정과 거의 흡사해 왠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곳에서 만든 종이로 제작한 다양한 상품들도 판매하고 있다.
재래시장(Centenary Farmers market)
전통 양식에 현대적 구조를 더해 2층 건물로 지어진 팀푸의 재래시장은 뜻밖에도 꽤 큰 규모를 자랑한다. 또한 판매하는 상품도 과일, 채소, 생선 등의 농수산물을 비롯해 부탄식으로 만든 피클과 다양한 청 종류, 우리의 것과 거의 흡사한 고춧가루까지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상인들의 모습이나 시장 풍경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환경도 비교적 청결한 편이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부탄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경험해볼 수 있다.
다운타운
다운타운이라고 하는 부탄의 시내는 작지만 꽤 분주하다. 부탄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과 보통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뒤섞여 제법 다운타운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옷가게, 카페, 레스토랑 그리고 밴드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클럽까지, 있을 건 없고 없을 건 없는 부탄의 시내를 저녁 휴식시간에 잠시 구경하는 것도 좋다. 레스토랑과 바에서는 맥주와 부탄의 전통 술도 맛볼 수 있고, 함께 어울려 술잔을 부딪치는 부탄의 젊은 남녀들도 만날 수 있다. 그런 평범함도 왠지 낯설고 괜히 재미있는 부탄이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학교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산허리에 걸터앉은 황톳빛 운동장이었다. 하얀 가루로 그어 놓은 선들이 바람에 날렸는지, 아이들의 발자국에 지워졌는지 군데군데 지워져 있는 모습이 이제는 기억조차 까마득한 옛 나날들을 꺼내어놓았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면서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공을 차던 볼이 빨간 소년들.
그때의 시간보다도 더 먼 과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교실의 풍경을 잠시 마주했다. 책상, 공책, 필통, 칠판... 그런 것들의 낡음이 학교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칫 오해할 뻔 했던 순간을 깨워준 건 아이들이었다. 우리에게 또박또박 영어로 이야기 했고 제법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명상에 잠기기도 했다. 거리감이나 거부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던 동그란 눈과 입안 가득한 웃음. 초등학생 그리고 아이들이라는 단어가 아주 적당하게 스며들어 있었던 그들의 얼굴들.
※ 부탄의 교육
부탄은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한 대학까지의 모든 교육을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한다. 등록금을 비롯한 각종 비용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쓰는 공책과 연필 하나까지 모두 국가에서 책임지고 있다.
대부분 자국어와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부탄 국민의 영어실력은 뛰어난 편이다. 이미 초등학교에서 회화가 가능할 정도로 교육시키기 때문이다.
108개의 스투파, 도출라 고개(Dochula Pass)
팀푸에서 푸나카로 가는 길, 해발 3100미터가 넘는 도출라 고개에 올랐다. 정상의 언덕 너머로 아침 안개와 구름이 뒤섞여 먼 하늘 너머에서 반겨주길 기대했던 히말라야의 영봉들을 가리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해발 6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의 설산들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는 가이드의 이야기가 무심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쉬울 필요는 없었다. 히말라야를 대신해 '드룩 왕걀 초르텐'이라고 불리는 108개의 스투파와 사원이 도출라 고개의 정상에서 아침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인도 정부의 부탁을 받은 부탄이 인도 반군을 소탕한 뒤, 전쟁에서 생을 마감한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원과 탑들. 108개나 되는 스투파에 담긴 영혼들 때문일까, 히말라야보다도 더 성스러운 기운이 도출라 패스의 정상을 감싸고 있었다.
※ 도출라의 봉우리들
1년에 단 몇 번만 볼 수 있지만, 도출라 고개에서 감상할 수 있는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은 매우 많다.
Khang Bum(6494m), Gangchen dhagang(6563m), Gangchey Ta(6784m), Masang Gang(7194m), Tshenday Gang(6994m), Tari Gang(7304m), Jejekangphu Gang(7190m), Zongphu Gang(7094m), Gangchen Singye(7205m), Gangkar Punsum(7564m, 부탄에서 가장 높은 산)
푸나카(Punakha)
팀푸에서 동쪽으로 약 70킬로미터 떨어진 푸나카는 1955년까지 부탄의 수도였다. 때문에 이곳에 있는 푸나카 종은 팀푸의 타쉬쵸 종에 버금가는 명성을 지녔으며, 부탄을 대표할만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외에도 그림 같은 자연과 함께 역사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불교유적과 성지들이 있어 부탄을 찾는 여행객들의 대부분이 푸나카를 찾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부처님 세상, 푸나카 종(Punakha Dzong)
푸나카에 왔음을 알려준 건, 작은 강을 앞에 두고 우뚝 선 푸나카 종이었다. 초록 잔디 위에 줄지어 선 보랏빛 '자카란다(Jacaranda)' 나무들이 하얀 성벽의 푸나카 종과 어우러져 화사한 봄날의 향기를 마음껏 피워내고 있었다.
푸나카 종 아래 '모츄(Mochhu)'강에서는 여행객들이 그 황홀한 풍경을 만끽하며 래프팅 체험을 즐기고 있었고, 붉은 승복을 훌훌 벗어낸 스님들은 강물에 몸을 담그고 이른 더위를 씻어내고 있었다.
부탄 사람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부탄을 통일한 '샤브드롱(Zhabdrung)이 푸나카 종을 이 땅 위에 건설하고 보냈을 부탄 역사의 가장 아름다웠던 날들에 잠시 다녀오기라도 한 듯, 부처님의 세상 중에서도 가장 평안하고 여유로운 세상, 부탄 사람들이 그토록 가고자 하는 그 세상을 이곳 스님들의 넉넉하고 인자한 표정과 어느 곳보다도 활기 넘치는 사원의 분위기 속에서 만나고 온 것만 같다.
푸나카의 주요 볼거리들
치미 라캉 사원(Chime Lhakang)
부탄 불교의 이색적인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사원. 1499년 지어진 이 사원은 드룩파 쿤리의 불교 교리를 벗어난 기행에 관한 전설로 유명해졌다. 남근을 내놓고 아녀자를 농락하는 기행 때문에 치미 라캉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부탄의 수많은 신혼부부들이 찾아와 아들딸을 점지해 달라며 불공을 드리고, 절 아래 마을에는 남근이 그려진 벽화와 조각물 등이 가득하다. 남근은 다산을 기원하면서 액운을 쫓아내는 토속 신앙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 드룩파 쿤리(Drukpa Kunley, 1455~1529)
부탄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스님 중 한 명으로 여러 기행을 일삼아 ‘신성한 미치광이'로 알려져 있다. 그는 남근을 내놓고 아녀자들을 농락하면서 다녔는데, 이는 당시 불교 사원에 만연해 있던 라마의 권위주의를 꾸짖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드룩파 쿤리는 악마를 제압해 치미 라캉 사원에 가둔 성자이기도 하며, 부탄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캄섬 율레 남갤 초르텐(Khansun Yulley Namgyan Choeten)
푸나카계곡을 지나 깊숙한 산속마을의 전원 풍경을 스치며 30분쯤 산길을 따라 오르면 캄섬 율레 남갤 초르텐이 모습을 드러낸다. 약 8년 6개월 이상의 건축 기간이 필요했던 이 초르텐은 부탄 전통 건축물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례로 손꼽힌다.
초르텐 자체의 건축미도 뛰어나지만 이곳의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풍경은 부탄여행의 백미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산 속에 오밀조밀 무늬를 새긴 계단식 논과 옛날 방식으로 소와 함께 땅을 일구는 농부의 모습, 그 곁에 길을 내고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물이 하나 되어 만들어내는 풍경에 산을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마저 잊고 만다.
별이 빛나는 밤에, 팜스테이
남근이 군데군데 그려진 치미 라캉 사원 아래 마을에서 하루를 묵어가기로 했다. 해가 산 너머로 그 모습을 조금씩 감출 때쯤 도착한 마을의 공터에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소리가 가득했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함께 즐겨했던 놀이와 비슷해 보여 궁금증에 한참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리고 아이들도 나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집 마당에는 준비 중인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그 시절 엄마가 부르던 집 안에서도 늘 비슷한 냄새가 났던 것 같다. 방 안에 음식이 준비됐다. 뚜껑을 닫은 채로 상도 없이 바닥에 늘어놓은 오늘의 요리들.
할머니는 따로 저녁을 들겠다고 했지만 함께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방에 오붓하게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데 누군가 빠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집과 가족, 부탄에서도 그 단어들이 갖는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아보였다.
밤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푸나카의 작은 마을에는 이미 정적이 흘렀고 불빛들이 사라졌다. 밤하늘에 별이 초롱초롱 빛을 내고 있었다. 별을 보는 것이 그 밤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반가운 일도 없었다.
잃어버린 별을 다시 찾기 위해 마당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주인장이 내어온 전통주 한 잔이 더욱 맑게 빛을 냈다. 어쩌면 앞으로도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인생의 마지막 추억을 쌓고 있었다.
※ 팜스테이
부탄의 가정집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팜스테이는 사전에 여행사에 요청해야 한다. 부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현지식으로 꾸며진 잠자리와 음식들이 제공된다. 시골마을이지만 각종 시설이나 청결 상태 등이 한국의 일반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큰 불편 없이 체험이 가능하다.
고기와 술
불교국가인 부탄은 살생을 금한다.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을 것 같지만 부탄 사람들도 고기를 먹고, 식당에서도 닭고기와 소고기는 빼놓지 않고 나오는 편이다. 또한 추운 날씨를 대비해 돼지고기를 말려 먹기도 하며 고기는 모두 이웃한 인도에서 수입한다.
부탄 사람들은 술도 즐기는 편이다. 시골마을에서는 전통주 아락 등을 직접 담궈 먹기도 하고, 위스키와 맥주 등도 음식점에서 판매한다. 부탄 맥주인 드룩 비어 등도 비교적 맛이 괜찮은 편이다.
붐탕(Bumthang)
붐탕은 부탄의 중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팀푸에서 차로 약 10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현재 새롭게 건설 중인 고속도로가 완성되면 소요 시간이 훨씬 짧아질 예정이며, 공항이 있어 국내선 항공편으로도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부탄 사람들이 가장 성스러운 지역으로 생각하고,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손꼽는 지역이다.
좀 더 특별한 부탄의 이름, 붐탕
부탄 여행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가이드 니둡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붐탕을 부탄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라고 얘기했다. 그 어느 곳보다 성스러운 기운이 많이 느껴져 심적으로 편안하고 자연환경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팀푸에서 떠나 붐탕에 도착한 첫날은 도로사정으로 여행은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고, 늦은 밤의 붐탕에서 그의 이야기를 확인할 길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눈을 떠 창밖을 내다봤다. 눈부시게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한 장의 엽서 같은 풍경은 TV 속에서 보아왔던 히말라야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 붐탕에는 팀푸와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부탄의 모습이 있었다.
조금 더 깊고 진중한 마을, 그래서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빠져들면 중독되고 말 것 같은 곳이었다. 많은 여행객들이 거리와 시간을 핑계로 찾아가지 않는 곳, 붐탕은 그래서 나에게 더욱 특별한 부탄으로 남았다.
붐탕의 주요 볼거리들
쿠르제이 사원(Kurjey Lhakhang)
붐탕을 대표하는 사원이자 볼거리이다. 부탄에서 두 번째 부처라고 불리는 구루 린포체 파드마삼바바가 수행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사원 내부로 들어가면 동굴 주변에 그가 앉아서 수행했다고 전하는 자리가 남아있고, 법당 안에는 어느 승려가 수십만 번 절을 하며 남겨놓은 발자국의 흔적도 남아있다. 전형적인 부탄 양식의 3개의 건물로 구성된 구르제이 사원은 종종 부탄 왕실에서도 찾아올 만큼 부탄 불교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땀싱 사원(Tamshing Lhakhang)
비교적 작은 사원으로 작은 마을에 한가로이 떨어져 있다. 땀싱 사원은 1501년 고승 테르톤 페마 링파Terton Pema Lingpa가 창건한 사찰로, 사찰 내에 링파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흔적들이 여럿 남아있다. 가이드들의 설명을 들으며 그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버닝 레이크 미바르 소(Burning Lake Mebar Tsho)
15세기 고승 테르톤 페마 링파는 원래 도굴꾼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승려가 된 그의 이야기를 잘 믿지 않았고, 링파는 자신의 말이 맞는지 증명하기 위해 이 호수에 등불을 들고 들어갔다. 불이 꺼지지 않으면 자신의 이야기가 사실, 불이 꺼지면 거짓이라는 것. 결국 등불은 꺼지지 않았고, '미바르 소'는 '불타는 호수'라는 뜻을 갖게 되며 부탄 불교의 성지가 되었다
알고가면 더 좋은 부탄 이모저모
부탄 여행은 꼭 이렇게!
부탄 정부는 외국인들을 위해 특별한 여행 정책을 펴고 있다. 우선 개별여행, 자유여행이란 개념이 없다. 정부가 공식 지정한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패키지 투어만 가능하며, 현지의 가이드와 반드시 함께 다녀야 한다.
또한 스케줄과 상세한 옵션 등도 현지 여행사와 협의해야 하기 때문에 부탄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현지 사정에 밝고 현지의 여행사와 계약이 되어 있는 국내의 부탄 전문여행사를 통하는 것이 좋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부탄은 사전에 여행경비를 내야만 비자를 발급해주며 입국이 가능하다. 개인당 1일 200~250달러, 비수기 200달러를 내야하며, 정부는 130달러를 국민의 교육과 복지 등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 로얄티 형식으로 가져가고 나머지 비용을 지정된 여행사에서 숙박비와 식비, 교통비 등으로 사용한다.
부탄은 이렇게 높은 여행비용을 통해 여행객 수를 조절하여 오염을 방지하고 있다. 식사 시 별도의 주류비, 가이드와 운전사 팁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 별도 지불해야 하며 호텔 및 룸 업그레이드, 여행지 옵션 추가 등이 필요하다면 협의를 통해 추가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쉽지 않은 부탄 입국
부탄으로 입국하는 방법은 인천–방콕–부탄 파로 공항 루트가 가장 일반적이다. 방콕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부탄 행 비행기에 올라야 한다. 인도 또는 네팔을 거쳐 입국하는 방법도 있다. 부탄에서 인도의 몇 개 도시와 네팔 카트만두를 오가는 항공편이 있으며, 인도에서는 육로를 통해서도 입국 가능하다.
화폐와 환전
부탄의 화폐는 '눌트럼(Ngultrum)'이며, 미국달러도 사용 가능한 곳이 많다. $1에 약 80눌트럼 정도이며 한국에서 미국달러를 준비해가서 현지에서 환전소 등을 통해 재환전을 해야 한다. ATM도 있어 국제현금카드 등으로 인출도 가능하다.
기획모두투어 (에디터 김관수)사진모두투어(에디터 김관수),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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